고샅고샅

영양 두들마을

나래아빠 2013. 10. 14. 16:40

영양 두들마을

 

영양군 석보면에 소재한 두들마을은 약400년 전에 형성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과 굴욕적인 외교를 맺게되자 1640년 이시명(李時明)은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쓰며 마을을 이루었고,이후 재령이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 되었다.

현재 마을에는 약 30여채의 전통가옥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전통가옥은 이시명과 부인안동장씨가 살았던 석계고택이다.

 

 

이마을은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며

그의작품'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영웅시대'우리들의일그러진 영웅'등

많은 작품속 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진 무대이기도 하다.

 

 

1600년대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조리법을 소개한'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정부인 안동장씨 장계향(이시명 부인)또한 유명하다.

시(詩) 서(書) 화(畵)와 성리학에 능하여 조선시대여인중 유일하게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불렸다.

 

 

 

 

 

 

 

 

 

 

 

 

여중군자 장계향

 

 여중군자 장계향(1598∼1680) 선생이 조선시대 신사임당(1504~1551)과

 더불어 대표적 현모양처로 꼽히는 인물로 1598년(선조 31년)

지금의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아버지는 퇴계의 학손(學孫)인 경당 장흥효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에

무남독녀로 출생했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조선 중기 대학자로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낸

아버지 밑에서 일찌감치 유학의 기본서인 소학(小學)를 깨쳤고,

13살에는 ‘몸가짐을 조심하다’, ‘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시를 남겼다.

글씨도 잘 써서 그녀가 쓴 초서체는 당대의 서예가인 정윤목도 “기풍과 필체가 호기로워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평할 정도였다.

영특한 소녀였던 장씨는 그녀의 나이 19세에 석계 이시명과 혼인해 10남매(7남 3녀)를 훌륭히 키워냈고

 아들 7형제는 학문이 뛰어나 칠현자(七賢者)라는 칭송을 받았다.

특히, 3남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숙종 임금으로부터 정부인 품계를 받아

 ‘정부인 안동장씨’로 불리게 되었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상황에서는

도토리 죽을 쑤어 이웃을 구휼하는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1680년(숙종 6년) 83세의 나이로 경북 영양군 석보촌에서 타계하기까지,

한시 12수, 맹호도, 인두화와 75세에 완성한 한글최초 요리서 ‘음식디미방’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장씨는 시인, 서예가, 화가, 교육자, 조리과학자, 사회사업가로 널리 활동을 했고

한국 역사상 많은 여성들 가운데서 가장 모범적이요, 대표적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음식디미방은 146가지 음식의 요리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본격 요리서로서

3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따라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으로

도와 영양군은 보존회를 결성해 ‘음식디미방’ 음식을 복원해서 활용하고 있다.


 

여중군자 장계향 예절관

 

 

 

 

 

 

천재시인 몽구 이병각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