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샅고샅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나래아빠 2013. 10. 26. 01:15

 

 병산서원(屛山書院)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례문

     서원의 정문. 지금은 주사의 왼편에 있는 문을 통해 서원을

    

출입할 수 있습니다.

   

 (복례문에는 '내가 이곳에 들어가기전 예를 지킨다' 라는

     

뜻이 스며 있다고 합니다.)

 

만대루

     유생들의 행사때의 한자리에 모였던 대강당.

     

병산서원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로서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입니다.

     

이곳 만대루에서 병산을 바라보며 시를 읊기도, 때론

     

가야금이 연주되기도 하였겠지요..

 

 

 

 

 

존덕사

     서원 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선생과 셋째아들인 류진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입교당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강학당(講學堂), 한마디로

     

수업을 받던 '교실' 입니다.

     

입교당은 중앙은 강학당, 동쪽으로 명성제 서쪽으로 경의제

    

 로 모두 세칸을 나누어져 있습니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라는 뜻의 입교당은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병산서원의 중심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동재와 서재

     입교당과 만대루 사이의 마당에 위치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워져 있는 이 건물은 당시 학문에

     

열중하던 유생들의 기숙사였습니다.

 

 

 

장판각

     서원에서 펴낸 책을 인쇄할 때 쓰이는 목판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전사청

     위패가 모셔진 존덕사의 오른편에 위치 존덕사에서 쓰일 제물을 준비하였습니다.

 

 

뒷간

 달팽이 모양을 닮은 '머슴뒷간'은 '통시'라고도 불리워 졌습니다.

     

  통쾌하구나~,  시원~ 도 하구나..!   (예로부터 전해오는 2행시라고 하는군요.^^;)